정조에서 순종까지
안녕하세요. 진쌤입니다.
오늘은 조선왕 역사 이야기 마지막시간입니다. 정조에서 순종까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조에서 순종까지
[정조] 재위기간 1776-1800
뒤주에서 죽어간 사도세자의 아들입니다.
창덕궁 내 규장각을 만들어 왕실의 도서관 역할을 하며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아 교육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실제 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학문인 실학이 유행했는데, 대표 인물로 정약용, 박지원, 유수원, 이익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정약용은 배다리를 만들고 도르래를 활용한 거중기를 이용해 수원성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목민심서(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 경세유표(토지 등 각종 제도의 개혁), 흠흠심서(형법서) 등의 책을 썼습니다. 실학이 유행했던 것에 반해 천주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의 이유로 천대받았습니다.
또한 전쟁없는 나날이 계속되어 김홍도의 서당과 씨름 작품을 통해 평화로운 조선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순조] 재위기간 1800-1834
11세의 왕에 오르면서 영조의 계비(대왕대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였습니다. 정순왕후는 사도 세자를 죽이는데 찬성했던 당파의 중심인물로, 자신이 반대파인 남인들을 죽이는데 천주교를 이용하였습니다. (천주교신자 제거, 신유박해) 정순왕후가 사망하면서 안동김씨 일가가 권력을 잡으며 세도정치(왕의 친척이나 신하가 간섭多)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라살림보다 권력차지에 급급했던 대신들로 인해 백성들의 난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중 홍경래의 난(1811)이 대표적입니다.
[헌종] 재위기간 1834-1849
헌종이 8세에 왕이 되면서 풍양조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농업과 상민으로 부자가 된 천민들이 돈을 주고 양반계급을 사면서 계급제가 엉망이 되고 각종 자연재해로 백성들은 살기가 어려운 와중에 삼정의 문란까지 겹쳤습니다.
조선시대의 세금제도 중 삼정이란, 전정, 군정, 환정(환곡)입니다.
전정은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원래는 땅의 소유주인 지주가 내야 하는데 소작농에게 전가하였습니다. 또한 천민들이 양반이 되면서 군정을 내는 백성수가 줄어들자 어린아이와 죽은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습니다. 삼정 중 환곡의 폐단이 가장 심했는데, 봄에 빌려주는 양을 속이거나 빌려준 곡식에 과한 이자를 붙여 가을에 돌려받았습니다.
헌종 기간의 대표인물로는 추사 김정희(명필)가 있습니다.
[철종] 재위기간 1849-1863
철종의 형이 모반죄에 걸려 온 가족이 유배가 되어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권력층은 안동김씨였는데, 자신들의 말을 잘 들어줄 왕으로 누구를 올릴까 고민하다가 농사를 짓고있던 철종을 다시 한양으로 불러와 왕을 시켰습니다.
당시 세금을 내지 않고 나라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던 서원의 수가 1000여개가 되는 등 서원의 폐단이 심해지면서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의 민란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의 사상(최제우)이 백성들에게 퍼졌습니다.
[고종] 재위기간 1863-1907
당시에는 똑똑한 인물들은 세도정치 일가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성대원군은 정치에 관심없는 척을 하면서 뒤로는 고종을 왕위에 올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종이 왕이 되면서 안동김씨 일가를 숙청하고 평등하게 인재를 등용하려 노력하였고 벼슬아치를 없앴습니다. 그리고 많은 폐단을 불러일으켰던 서원을 없애고 왕실의 권위를 강화시키고자 임진왜란때 소실된 경복궁을 다시 지었습니다. 경복궁을 짓는데 돈이 많이 필요하자 백성들에게 당백전을 발행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백성들의 원망을 사기도 합니다.
이전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9명의 프랑스 신부와 신자가 처형당하는 병인박해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중에 병인박해를 원인으로 프랑스가 침략하기도 합니다.
문호 개방을 하지 않는 쇄국정치를 펼치던 흥성대원군이 권력을 잃을 즈음 일본이 마실 물을 구한다는 핑계로 군인을 보내 강화도 연안을 살피게 됩니다. 강화도의 초지진 포대는 일본이 허락도 없이 조선의 연해를 살피자 대포를 쏘아 접근을 막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일본이 공격을 합니다. (운요호사건) 그리고 187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 고부군수 조병갑이 부당한 세금을 걷자 전봉준과 수천명의 농민이 들고 일어납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게 되고 조선에 있는 일본군을 지킨다는 핑계로 일본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근대식 무기를 갖춘 일본군에 농민군이 패하고 동료의 배신으로 전봉준이 체포되면서 동학농민운동을 마무리됩니다.
[임오군란] 고종의 왕비는 명성황후임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궁인 이씨를 사랑했습니다. 궁인 이씨가 숙원이 되어 완화군을 낳자 흥선 대원군이 완화군을 원자로 책봉하려 하면서 명성왕후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됩니다. 1882년 근대식 군대인 별기군이 특권을 누리는 것에 반해 급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구식 군대가 정부 고관들의 집과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게 됩니다. 이때 흥선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명성황후는 피신하면서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임오군란의 결과, 청나라의 간섭이 더욱 심해지면서 이에 반발하는 젊은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갑신정변은 실패하였지만 개혁이 필요하단 것을 조정이 깨닫게 되면서 인신 매매 금지, 조혼 금지 등의 여러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갑오개혁이라고 합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 나라에 큰 일이 생길때마다 청나라와 러시아에게 힘을 빌리는 명성황후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였습니다. (을미사변) 명성황후가 죽으면서 일본의 힘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고종은 러시아로 몸을 잠시 피했다가(아관파천) 1897년 나라이름을 대한제국이라 선포하며 다시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순종] 재위기간 1907-1910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입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강압적으로 제1차 한일협약,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을 체결하며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으면서 우리나라는 독립국가의 실권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08년 사법권이 일본에게 넘어가고 군부와 법부도 폐지되었습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에 도장을 찍으면서 조선왕조(27대 518년)의 역사도 끝이 나게 됩니다.
그 후 순종은 이왕으로 지위가 떨어지고 1926년 세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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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조선역사가 마무리 되었네요. 정말 안타까운 끝입니다. 역사에는 만약에 - 였다면, - 이렇게 행동했다면의 가정을 해보는게 의미없지만 속상한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수많은 분들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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