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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 태조부터 세조까지,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 수업 이야기 (1)

by 진쌤에듀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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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진쌤입니다.

2021학년도에 5학년 역사를 가르치려고 보니 너무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더라구요.

음 어떤느낌이냐면, 태조가 있었다. 태조가 죽었다. 정종이 즉위했다. 죽었다. 뭐 이런느낌,, 

 

아무튼 그래서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나마 왕들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제가 요약하는 책 이름은 [어린이 조선왕조실록, 김영사]입니다.

 

저도 누가 뭘 했던지 시간이 지나면 까먹어버려서 이렇게 포스팅으로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

태정태세문단세

[태정태세문단세, 태조부터 세조까지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수업 이야기]

 

 

[태조] 이성계 / 재위기간 1392-1398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같은 팀으로 모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인 이방원이 정몽주를 만나, '하여가'를 읊으며 정몽주의 반응을 살폈으나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가하며 고려에 대한 충성을 져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선지교에서 죽여버렸고, 정몽주가 죽은 선지교에 핏자국이 남고 대나무가 자랐다고 하여 '선죽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EGVBaSxYIQ 

YOUTUBE, 지니스쿨 역사, 선죽교의 비극

<하여가,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상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만년 누리고저

 

<단심가,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당시의 왕은 공양왕이었는데, 공양왕은, 왕위를 공손하게 양보한 왕이라는 뜻입니다.

 

.

 

조선의 1대 왕이 된 이성계에게는 두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첫째 신의왕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6명(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둘째 신덕왕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2명(방번 방석)

 

이성계는 둘째 신덕왕후를 사랑하여 처음에는 방석에게 세자자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이를 질투한 이방원이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방번과 방석 그리고 방석을 세자로 올리는데 도움을 준 정도전을 모두 죽이고 맙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때 큰 도움을 준 인물입니다. 종묘, 사직을 관할하고 경복궁, 창덕궁의 이름을 지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성계는 아끼는 신하와 아들들이 죽자 함흥으로 들어가게 되고 왕위는 둘째 아들인 방과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따라서 방과가 조선의 제2대왕, 정종이 됩니다.

 

 

[정종] 방과 / 재위기간 1398.09-1400

방과가 제2대왕이 되자 이방원은 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제1차 왕자의 난을 도왔지만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던 박포가 이성계의 넷째아들 방간과 방원을 이간질 합니다. 방간이 방원을 뒤통수친다는 소문을 내면서 이방원의 군대와 이방간의 군대가 맞붙게 됩니다. 이방간의 군사의 수가 많았지만 이방원은 조선을 세우면서 군대를 이끌었기 때문에 싸움을 이방원의 군대가 더 잘했습니다.

결국 이방원의 군대가 이기면서 박포는 사형에 처했고 이방간은 유배당합니다.

 

이 사태를 지켜본 정종은 무서워서 이방원에게 왕위를 내어주고 맙니다.

 

[태종] 이방원 / 재위기간 1400-1418

왕이된 이방원은 함흥에 계신 태조를 데려오기 위해 수많은 신하를 보냅니다. 그런데 함흥에 간 신하들을 이성계가 모두 죽이고 맙니다. 함흥에 간 신하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일을 두고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mb2IlZz9bA 

YOUTUBE, 지니스쿨 역사, 이방원의 분노와 2차왕자의 난 & 함흥차사 비화

 

태종은 여러 노력끝에 아버지 태조를 한양으로 모셔와 옥새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첫째 양녕대군도 뛰어난 아들이었지만, 셋째 충녕대군이 왕으로써 적합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장자계승이 원칙이었으므로 양녕대군이 왕이 될 뻔 하였지만, 부모님들이 충녕대군을 세자로 지정하고 싶다는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방원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된것을 알고 있던 첫째,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를 조용히 충녕대군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세자 자리를 넘기기 위해 일부러 미친척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종] 충녕대군 / 재위기간 1418-1450

양녕대군 대신에 세자가 된 충녕대군이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조선의 왕은 모두 대왕입니다.)

세종대왕시기는 문화적으로 꽃 피운 시기인데요. 다들 아는 것처럼 훈민정음을 창체(1443) 및 반포(1446)하였습니다.

학문의 발달을 위해 집현전을 크게 키웠으며 (집현전 : 고려시대부터 존재한 왕실 연구기관) 장영실을 등용시켜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 집현전의 유명학자로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이 있습니다. 나중에 단종복위를 돕는 사육신이 됩니다. 

* 장영실 (기생의 아들, 관노) 

 - 간의대 제작

 - 금속활자 갑인자 제작 및 감독

 - 자격루 제작

 - 천체 관축 기구 간의 완성

 - 해시계, 앙부일구 등 완성

 - 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측정하는 기구 측우기 제작

 - 장영실이 만든 왕의 가마가 무너지면서 쫓겨남

 

* 용비어천가 - 훈민정음의 실용성 시험용

* 훈민정음해례 - 보기를 만들어 쉽게 설명한 책, 본문을 풀이함.

* 훈민정음 - 훈민정음해례와 훈민정음예의(본문)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

 

그 뿐 아니라 아악을 정리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습니다. 또한 김종서로 하여금 여진을 정벌하게 하였고 압록강 유역에 4군, 두만강 유역에 6진 개척하였습니다.

황희와 맹사성 같은 청렴하고 유능한 신하를 곁에 두었으며 황희는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종] 재위기간 1450-1452

문종은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 왕을 오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차 위에 신기전(붙을 달아 쏘는 화살)을 꽂는 등 문종화차를 발명하였습니다. 또한 동국병감(전쟁서)을 완성시키고 고려사 139권을 간행하는 등 재능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문종은 왕이 된지 2년 3개월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단종] 재위기간 1452-1455

단종은 태어난지 이틀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에 아버지(문종)를 여의고 할아버지(세종), 할머니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단종에게 힘을 보내줄 어른이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세종의 아들이며 숙부인 수양대군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등과 함께 반란을 도모하였고 이 일을 계유정난이라고 합니다. 계유정난을 통해 김종서와 측근들이 죽으면서 단종은 억지로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세조] 재위기간 1455-1468

세조가 왕이 된 후 단종의 복위를 위해 움직였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사육신과 생육신입니다.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개, 유응부를 말합니다. 세조를 없애려고 후일을 도모하던 와중에 함께 일을 하던 김질이라는 인물이 겁이 나 자신의 장인어른인 정창손을 찾아갑니다. 정창손은 이 일을 세조에게 알렸고 사육신은 역적모의로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사육신처럼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단종을 위한 충성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들을 생육신이라고 합니다. 대표 인물로는 김시습 등이 있습니다. 

 

단종의 복위를 추친하는 인물들이 자꾸 생기자 세조는 결국 단종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여 왕이 된 세조이지만 국방, 외교, 서적 편찬 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업적을 남기며 죄를 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세조는 창병(부스럼)에 걸려 괴로워하다 세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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